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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09:20

코스와의 전쟁 US Open

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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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힐스-US오픈_수정.jpg

위스콘신주 최초의 US오픈 개최지 에린 힐스

 

1974년의 US오픈은 ‘윙드풋의 대학살(Massacre at Winged Foot)’이라는 끔찍한 별명을 갖고 있다. 뉴욕주 머매러넥의 윙드풋 골프장에서 열린 이 대회 우승자의 스코어는 나흘 합계 7오버파 287타였다. 첫날 아무도 언더파를 적어내지 못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결국 마지막 날 15·16번홀에서 보기를 했지만 17·18번홀을 파로 막은 헤일 어윈(미국)이 2위와 2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US오픈에서 7오버파 우승은 여러 번 있었고 9오버파로 우승한 기록도 있다. 어윈은 US오픈 역사상 마지막 7오버파 우승자로 남아있다. 바로 직전인 1973년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골프장에서 열린 대회에선 조니 밀러(미국)가 최종 라운드에 놀랍게도 63타를 쳤다. 밀러는 선두에 6타 뒤진 공동 13위로 출발하고도 합계 5언더파로 우승했다.


코스를 거의 정복하다시피 한 밀러의 마지막 날 플레이에 US오픈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충격에 빠졌다. 다음 해 대회의 코스세팅을 과도할 정도로 높인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당연히 선수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그러나 당시 USGA의 집행위원이던 샌디 테이텀은 단호하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선수들에게 당혹감을 줄 의도가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능력을 증명하게 하고 싶을 뿐이에요.”


테이텀의 말은 US오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US오픈은 매년 코스와의 전쟁을 마련해 당대 최고 골퍼들의 한계를 시험한다. 올해도 마찬가지. 위스콘신주의 평화로운 마을 에린은 15일 밤(한국시간)부턴 골퍼들의 탄식으로 가득 찰 것이다.

 

 

2006년 윙드풋에서의 US오픈. 필 미컬슨(미국)은 마지막 홀 더블보기로 1타 차 공동 2위로 미끄러졌다. PGA 챔피언십과 마스터스에서 연속 우승한 미컬슨은 메이저 3연승을 마지막 순간에 날렸다. 

 

“내가 일군 땅에서 US오픈을”…못 말리는 봅 아저씨의 성공기 

 

117회 US오픈 대회장인 에린 힐스는 봅 랭을 빼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보청기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주택 건설업자를 거쳐 달력사업으로 큰돈을 번 랭은 고향인 위스콘신주에서 US오픈을 여는 게 꿈이었다. 그는 꿈을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밀워키에서 차로 30분을 더 올라가야 하는 외딴 시골의 드넓은 땅에 골프장을 지었다.


코스 레이아웃 작업이 한창이던 2004년, 건축가의 부탁을 받은 USGA의 마이크 데이비스가 에린 힐스를 방문하면서 랭이 그린 밑그림은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골프매거진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눈앞의 출렁이는 지형에서 구겨진 침대 시트와 스코틀랜드 해안의 모래언덕을 떠올렸다. 어쩌면 US오픈을 치를 최적의 장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이다. 골프장이 개장한 2006년 이전에 USGA가 2008년 US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개최지로 에린 힐스를 낙점하면서 랭의 계획은 탄력을 받았다. 부지를 더 넓히고 시야에 걸리는 몇몇 집을 사들여 철거했다. 2011 US아마추어선수권 개최까지 2008년에 확정하자 랭은 240만달러를 대출받았다. 그 돈으로 US오픈을 염두에 두고 대대적인 코스 정비에 나섰다. 직접 트랙터에 올라 벙커를 파고 그린을 옮기기도 했다.


에린 힐스는 2010년에 마침내 2017 US오픈 개최지로 선정됐다. 땅을 소개받은 랭이 처음 투자에 나선 게 1999년이었으니 11년 만에 꿈을 이룬 것이다. 11년 전 그는 9홀 코스를 찾던 중이었다. 본인은 골프를 거의 치지도 않으면서 직원들 복지를 위해 9홀 코스를 지을 생각이었다. 랭은 그러나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농장지대를 접한 뒤 오랜 소원을 끄집어냈다. 그의 눈에는 미래의 US오픈 대회장이 보였다.


불행하게도 랭은 에린 힐스가 US오픈 대회장으로 선정되기 직전에 코스를 매각했다. 막바지 코스 정비를 위해 빌렸던 돈을 갚지 못해 2009년 말 골프장 소유권을 넘긴 것이다. 골프장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랭의 개척정신과 그 결실은 위스콘신 사람들뿐 아니라 전미를 넘어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올해 일흔둘로 자택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랭은 누구보다 벅찬 감정으로 올해 US오픈의 첫 티샷을 정든 에린 힐스에서 지켜볼 것이다.

 

US아마추어선수권 당시의 에린 힐스

 

“선수들이 폭스바겐 비틀에 올라가기라도 한 것 같다. 자동차 지붕에서 퍼트하는 느낌이다.”


1973년 US오픈 챔피언이자 미국 NBC의 해설가 조니 밀러가 2005년 US오픈 중계 중 한 말이다. 당시 대회장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골프장. 선수들이 도저히 볼을 세울 수 없는 2번홀 그린의 환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셔널타이틀 대회 US오픈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을 벗어나지 않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바람 많은 해안가의 10개 링크스 코스를 순환하는 브리티시 오픈과도 차이가 있다. US오픈의 대회장 선정은 로테이션 방식도 아니다. 퍼블릭 골프장이든 프라이빗 코스든 상관없다.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을 선호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배제하지 않는다. 미국 전역의 어렵기로 소문난 다양한 골프장들을 찾아다닌다. PGA 챔피언십을 포함한 4대 메이저대회의 역대 우승자 스코어를 합산하면 US오픈이 월등하게 높게 나온다.


그럼 역대 US오픈 대회장 중 최고 난도 코스는 어디일까. 폭스스포츠는 1950년 이후 세 번 이상 US오픈을 개최했거나 최근 20년간 한 차례 이상 US오픈을 치른 곳을 대상으로 톱10에 오른 골퍼들의 스코어를 분석,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1위는 윙드풋, 2위는 샌프란시스코의 올림픽 클럽, 3위는 오크몬트로 나타났다. 오크몬트는 US오픈을 9차례나 개최한 최다 개최 골프장이다. 2025년에 10회를 채운다. 조던 스피스(미국)는 지난해 오크몬트에서 열린 US오픈을 앞두고 “이곳에서의 US오픈을 우승한다면 골프라는 운동에 있어 제일 어려운 테스트를 정복했다고 말해도 좋다”고 했다.

 

 오크몬트의 '교회의자 벙커' 

 

ESPN은 1982년 US오픈 우승자 톰 왓슨(미국)과 골프코스 설계자, USGA 역사가 등의 도움을 받아 역대 US오픈에서 가장 어려운 홀을 꼽았다. 1위는 오크몬트 1번홀(파4·482야드). 티샷이 떨어지는 지점은 좁고 페어웨이 왼쪽은 벙커 5개, 오른쪽은 벙커 3개에 나무도 버티고 있다. 두 번째 샷 지점에서 그린 경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이 홀에서 버디는 29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161개의 보기와 30개의 더블보기를 남겼다. 


2온이 힘겨운 윙드풋의 9번홀(파4·514야드)이 2위다. 솟구쳐 올라와 있는 그린은 가운데 마운드까지 품고 있고 그린 주변엔 벙커 5개가 도사리고 있다. 2006년 최종 라운드에선 30.2%만이 레귤러 온에 성공했다. 3위는 뉴저지주 발투스롤 골프장 4번홀(파3·194야드). 특히 핀 위치가 앞쪽이면 최악이다. 어느 위치에 떨어뜨려도 내리막 퍼트다. 홀을 지나쳐 물로 끌려 들어가는 게 예사다. 그러나 이 골프장을 설계한 로버트 트렌트 존스는 투정을 늘어놓는 사람들 앞에서 4번 아이언으로 멋지게 홀인원을 선보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봤죠? 완벽하게 공정한 홀입니다.”


에린 힐스를 향한 선수들의 투정도 쌓여가고 있다. 페어웨이를 조금만 벗어나도 빨려드는 무릎높이의 깊고 질긴 러프에는 미지의 동물이라도 살 것만 같다. 어떤 선수는 러프 공략을 위해 여성용 9번 우드를 비밀병기로 준비하기도 했다. 벙커 턱은 절벽처럼 거칠고 어지러우며 그린 주변은 핀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형이 험악하다. 전문가들은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외곽지역 골프장과 닮았다. 완만한 언덕과 페스큐 그래스는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다” “모든 샷이 도전일 것이고 모든 홀, 모든 장소가 새로울 것이다. 끝없는 언덕 지형은 훌륭한 샷에 확실한 보상을 안기겠지만 미스샷에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림픽 클럽에서 티샷하는 타이거 우즈

 

발투스롤 골프장. 아널드 파머가 벙커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16언더파, 15타 차, 21세 기록은 깨질 수 있을까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말을 들으면 코스에 대한 다른 선수들의 반응은 다 엄살 같다.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는 “US오픈 대회장치고는 (페어웨이가 넓어서) 관대한 편이다. 정확도만 뒷받침된다면 선수들이 공격적인 공략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월 입은 갈비뼈 부상 탓에 휴식이 길었던 그는 “부상 후유증은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푹 쉬어서 에너지가 가득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하다. 매킬로이는 2011년 메릴랜드주 콩그레셔널 골프장에서 열렸던 US오픈에서 16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16언더파는 여전히 대회 최다 언더파 기록이며 앞으로도 웬만해선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당시 2위 제이슨 데이(호주)와의 격차는 8타였다.


2위와 최다 타수 차 우승 기록은 타이거 우즈(미국)가 갖고 있다. 2000년 페블비치 대회에서 12언더파를 적은 우즈는 어니 엘스(남아프리카공화국)와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를 15타 차로 눌렀다. 이 역시 우즈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한 경신이 어려워 보인다.


스피스는 2015년 체임버스베이에서 만 21세로 우승했다. 선수들의 불만이 빗발친 울퉁불퉁한 그린을 정복하고 마스터스에 이어 메이저 2연승을 해냈다. 올해 우즈는 못 나오지만 매킬로이와 스피스는 어김없이 우승후보로 꼽힌다. US오픈 역대 최장인 7,741야드(파72)의 에린 힐스에서 세계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은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출산이 임박한 아내 곁을 지키기 위해 출전 포기도 생각했던 그는 지난 화요일 둘째 아들을 얻었다.


US오픈은 2000년대 들어 17차례 대회에서 14명의 챔피언을 배출했다. 최근 8년간 챔피언은 매번 US오픈 첫 우승자였다. ‘코리안 영건’ 김시우, 안병훈, 왕정훈, 김민휘도 골프대회 사상 최대 우승상금(216만달러)을 다툴 당당한 후보들이다.

 

 

2011년 로리 매킬로이(왼쪽)의 우승을 축하하는 양용은. 매킬로이는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동반 플레이어 양용은은 공동 3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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