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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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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나은 반쪽 

                   

영어에 ‘better half' 란 말이 있다. 이 말은 흔히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속어체로서 ’배우자‘란 말이다.  배우자를 ‘보다나은 반쪽’ 이라고 함은 말 자체에 묘미가 있다.  반쪽은 절반의 의미가 있고 동반의 의미가 있다.  생각해 보면 부부는 양쪽이 모두 있어야 하나가되고 온전해지며 부부 중 한사람만 내놓으면 반쪽에 불과하다. 

 

처음 결혼해서는 그렇게 못 느꼈는데 결혼생활이 40년이 넘고 나니 새삼스럽게 부부는 둘이 합쳐 질 때 하나가 됨을 절감한다. 이제 집사람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가장 소중한 동반자임을 다시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제는 서로 눈빛만보고 목소리만 음미해보고 얼굴만 스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나의 결혼관은 당연히 나의 부모님들의 결혼생활을 본 것으로 나에게는 너무 지당하고 자연스런 고색창연한 것이었다.  분명히 모친에 대한 부친의 횡포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결혼관은 전근대적 한국 고유의 유습을 꿈꾸는 결혼관이었다.  집사람은 남편을 하늘같이 모시고 나는 집안에서 엄격하게 전제 군주식 집권을 한다는 꿈이었다.  어쨌든 나의 한 많은 결혼관 은 결코 성취되지 못했고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결혼 후 나의 전제적인 통치는 몇 달 못가서 허물어지고 말았지만 그 몇 달도 알고 보면 집사람이 막 시집와서 남편에게 한없이 고분고분하던 신혼 기간이었다. 

 

나의 고색창연한 결혼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사람을 처음부터 인격체인 독립된 인간으로 대우했고 아마 이점이 나의 취약점(?) 이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부터 집사람을 우리부모들이 하던 식으로 나의 부속품이나 몸종같이 엄하게 다루었다면  결과는 다를 수도 있었을 탠데.... 

 

사람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20-30년씩 살다가 결혼 한 후 같이 살면서 적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 후 제일 처음 문제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음식문제는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결혼 초부터 나는 부부일심이라는 확고한 정신으로 사소한 좋은 일 이나 나뿐 일도 모두 사랑의 대화로 얘기 했는데 집사람은 불만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있다가 그렇다고 마음이 넓어서 속으로 삭여 내지도 못하고 기회가 되면 고무줄 튕겨 나오듯이 한꺼번에 탁탁 튕겨 나왔다. 나 혼자만 모든 집안일이 평안하며 원만한줄 알고 살다가 가끔 집사람이 모아놓은 고무줄 세례를 당하곤 하였다. 

 

그래서 집안문제는 그 즉석에서 해결하자고 내가 제의해서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의 해결은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집사람이 다소곳이 남편의 말만 들어야 가정이 평안해지는데 집사람이 그때그때 이일 저일 상관하고 말대답이 있으면서 부터 부부싸움이 자주 일어났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는 한집안이 평안해지려면 양순하고 온순한 부인은 사나운 호랑이가 되고 횡포스런 남편은 양같이 온순해질 때 비로소 완전한 평화가 온다고 한다. 우리집안에 가끔 싸움이 있음은 아직도 집사람이 호랑이가 되지 못했고 나는 양이 되지 못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부부의 숙원의 문제는 다른 결혼관이었다. 나의 결혼관은 명실 공히 동양의 미덕인 가족 봉건제였고 집사람의 결혼관은 매우 신축성이 있어서 집안 어른들이나 친척들의 방문 시에는 매우 봉건적인 것 같다가 실제 평소에는 남편을 동급의 동반자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나의 결혼관은 부부가 상하관념이고 집 사람의 결혼관은 동급내지 2중형이었다.  그래도 결혼 후 얼마간은 남편을 봉건적인 남편으로 대우하는 것 같더니 날이 갈수록 차츰 차츰 변화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집사람의 야금 야금의 변화였다. 그 변화는 40년간 이상의 세월 속에서 나 자신도 모르고 집사람도 모르게 변화했다는 사실이며 그 변화는 대부분 집사람이 원하던 방향으로 변화 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냉철히 살펴보니 우리 부부관계에서 옛날 우리부모들의 부부관계의 흔적이나 냄새를 맡아보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시도이다.  

 

결혼 후 초기에는 남자의 우월의식과 권위의식 으로 모든 일을 거의 나 혼자 결정하고 집사람에게는 통보하는 식이었다.  결혼 후 몇 년간은 이런 일이 통했고 남편의 권위가 먹혀들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여자가 무슨 능력이 있어‘ 하던 나의 관념이 서서히 깨어져 감을 느끼기 시작 하였다. 

 

여자는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집 안팎에서 내가보는 집사람의 판단력, 분별력, 사고능력, 일을 해내는 능력 등이 여러 면에서 나보다 나은 점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부족한 영어실력 핸디캪을 돌파해 내면서 미국직장에서 인정받는 모습과 여자이면서도 남자 이상으로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 애착감, 푸로 정신 등은 때로는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오랜 세월 속에서 집사람이 보이는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헌신과 책임감은 나로 하여금 집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를 황당하게 하는 것은 매사에서 집사람은 때로 내가 보지 못하는 것 을 보며 나보다 더 먼 것을 보며 마음씀씀이도 나보다 더 넓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결혼 후 거의 10년 이상 집사람을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마음속으로 은근히 무시했던 나의 옹졸했던 적은 마음과 부당한 우월감과 미성숙을 깨닫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는 결혼 후 거의 10년간을 나의 특별한 잘못 없이도 우월감 하나로 집사람을 ’미세한 불행‘ 속에서 살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집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는 ‘무시함’에서 ’당황함’으로 그리고 ‘자랑’으로  바뀐 것이었다.  나는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두 사람 모두 직장에서 일하니 집안에서의 가사도 ‘똑같이‘ 나누어 하자고 제의하였다.  어쨌든 이제 우리부부는 부엌일과 집안일 거의 모두를 남녀 구분 없이 시간과 능력대로 같이 한다.  그렇게 살다보니 우리 집사람이 하기 싫은 일은 결국 내가 모두 떠맡게 되었다. 부엌에서 하는 마늘 까기, 파와 양파 다듬기, 쓰레기 버리기 등은 어느새 내 몫이 되고 말았다.

 

내가 집안에서 남편으로서의 지위가 결정적으로 떨어진 것은 우리에게 아기가 태어나고서 부터였다.  아기가 나면서부터 집안의 가장 좋은 것은 아기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귀한 자식은 아무렇게나 먹이고 천하게 키워야한다는 나의 지론이 집사람에게는 내가 애를 질투해서 하는 상투적인 말로 들렸음은 너무 당연했다. 

 

나의 전근대적인 결혼관을 깨우치게 한 것은 집사람의 잔소리도 아니고 목사님의 설교도 아니었고 아마 건전한 미국사회인 것 같다.  집사람이 미국직장에서 일하면서 직장 동료들로부터 받은 남녀평등 주의사상의 영향도 매우 큰 몫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부부관계의 기초는 우리의 신앙생활이었다.  분명히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 부부관계의 barometer 역할을 하였다. 

우리 부부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분명한 것은 나와 하나남과의 관계가 소원할 때였다.

 

부부관계는 20대와 30대는 사랑으로 40대는 정으로 50대는 의리로 살고 60대는 연민으로 70대는 그냥 산다고 한다.  우리의 부부관계를 돌이켜보면 사랑보다는 정이나 의리로 산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다른 분들은 나이 들어도 사랑으로 산다고 하는데 우리부부는 분명히 사랑보다는 정으로 연민으로 산다고 느낀다. 

 

70대 우리부부는 막다른 단계 즉 서로 같이 있으면 귀찮고 또 안보이면 아쉬운 부부가 된 것 같다.  부부관계는  묘해서 가장 가깝게 느끼면서도 어떤 때는 타인으로 느껴진다.  가장 화나게 만드는 상대도 가장 용서 할 수없는 상대도 배우자이며 상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도  배우자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서로를 더욱 필요로 하는 것이 부부이며  이 세상 어떤 인간관계에서 보다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부부간에 의리이며 신의이며 정이다.  

 

부부는 각자가 독립된 인격체이지만 부부가 합쳐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반쪽이 되어야하며 각자 반쪽은 항시 서로를 ‘보다나은 반쪽’이라고 존경 하여야한다. 반쪽만으로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두 반쪽들이 합쳐져서 안정을 누리게 된다.  또 각자 반쪽들은 항시 불완전해서 반드시 다른 한쪽이 있어야만 완전해 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두 쪽은 공생이전의 숙명이며 기쁨과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최소의 공동체이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의 binding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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