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8.07.27 22:37

진리의 양면성

Joe
조회 수 2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진리의 양면성

‘인간의 영혼은 우리의 이기심을 억제하며 진선미를 기초로 하여 조율과 화해와 합일을 통하여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한다.‘

 

-켄 윌버-

 

대부분 진리에는 양면성(兩面性)과 다면성(多面性)과 상충성이 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양면성과 상충성은 이념, 신념, 인생관, 가치관, 상황, 환경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사와 인간사는 필연적으로 양면성이 있으며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결국 세상사는 다면성이다.

우리는 편견과 각자의 지식과 다른 의식으로 통상 사물을 각자가 원하는 대로 보고 원하는 대로 듣는다. 우리의 보는 시각과 관점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우리의 삶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우리가 보는 거울 뒤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보아야 한다.

 

진정한 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상충성이며 양면성(兩面性)이 당연하다.

이 말은 양면이 다 진리이며 양면이 다 옳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진리는 모든 세대에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세대에 따라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모든 세대에 적용되는 진리는 사랑과 공의뿐이다.

 

우리의 삶에는 모순이 있다.

우리의 삶의 모순은 

필연적이며,

자연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때로 그 사람을 증오하며,

같은 진리를 각각 다르게 깨달으며,

우리의 지식, 이념, 신념, 인생관, 가치관, 양심, 전통이 다르기 때문이며,

하나의 진리에 몰두하면 우리는 다면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같은 진리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깨달아야 한다는 상념은 일부 종교인들의 확신이다. 

같은 진리를 나와 다르게 깨닫는 사람들을 적대하고 경멸하는 것은 무지와 교만과 미성숙을 의미한다. 

 

우리가 같은 진리를 비교적 비슷하게 깨닫는 것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거나 우리의 영혼이 추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영혼이 추구하는 사랑, 평등, 양심, 자유, 인간의 생명, 존엄성, 행복, 평등 등이다.

 

진리의 상충성과 양면성은 주로 우리의 이념, 신념 그리고 도덕률에서 발견된다. 우리의 상념은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리다고 확신하지만 때로는 양면이 다 옳기도 하고 양면이 다 옳지 않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살면서 우리와 종교적인 신념, 정치적인 이념 그리고 도덕성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매우 신중하고 속단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본능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이며 경멸감이기 때문이다

 

양면성이 없는 절대적인 진리도 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상충성은 같은 진리를 두 사람이 각각 반대로 깨닫는 것이다.

아래 예는 진리의 상충성과 양면성을 보여준다.

 

○ 자아 만족 ↔ 자아 부인

○ 이념적인 진보 ↔ 이념적인 보수

○ 신념적인 진보 ↔ 신념적인 보수 

○ 믿음으로 구원 ↔ 행위로 구원(성경) 

○ 꿈은 우리에게 갈등을 준다. ↔ 꿈은 우리에게 삶의 목표와 활력을 주어 헌신하게 하며 영혼의 생동감을 준다.

○ 사랑은 우리에게 아픔을 준다. ↔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삶의 보람을 주고 기쁨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게 한다.

○ 인간은 변화하지 않는다. ↔ 인간은 변화한다.

○ 신을 시험하지 말라. ↔ 신을 시험하라.(성경)

○ 이성은 믿음의 적이다. ↔ 이성은 믿음의 친구이다.(jc)

○ 세상은 공평하다. ↔ 세상은 불공평하다.

○ 진리는 주체성이며 객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진리는 객관성이다.

○ 죽음은 삶의 종결이다. ↔ 죽음은 삶의 과정이다.

○ 소통은 상대가 듣기 원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 상대가 듣기 원하는 말을 하는 것은 아첨이지 소통은 아니다.

 

○ 존재는 관념적이다.(플라톤) ↔ 존재는 감각적이다.(노자)


SCROLL TOP